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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우리 아이디어를 베꼈다!

대기업이 우리와 같은 것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스타트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분노보다 전략이 필요한 순간의 현실적인 선택지를 정리했습니다.

2024년 10월 10일리얼비즌9분 읽기

Question. 대기업이 우리 서비스와 거의 똑같은 제품을 출시했어요. 이거 법적으로 문제 아닌가요? 돈도 인력도 비교가 안 되는 상대인데,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건지 막막합니다.

카카오 헬스케어가 스타트업의 제품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한 스타트업이 개인 맞춤형 영양제 디스펜서를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제품 컨셉을 다듬고,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투자자와 미팅을 진행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카카오 헬스케어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제품을 발표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즉각 "베낀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이 스타트업이 싸울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대표가 김앤장 출신 변호사였고, 모든 미팅 내용을 어마어마하게 상세히 기록해두었기 때문입니다. 법적 대응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증거가 축적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이런 상황에서 속수무책입니다. 대기업의 자금력, 인력, 유통망 앞에서 법적으로 싸우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기업이 우리와 같은 것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스타트업은 정말 무력한 것일까요?

리얼비즌이 관찰해온 사례들을 바탕으로, 대기업의 모방에 대응하는 현실적인 프레임워크를 정리합니다.

프레임워크: 3가지 대응 경로

대기업이 우리의 영역에 들어왔을 때, 스타트업이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경로 1: 속도로 이기기 — 고객 확보 경쟁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많은 스타트업이 선택하는 경로입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면, 거의 유일한 방어책이기도 합니다.

대기업이 같은 아이디어를 실행한다 해도, 스타트업에게는 구조적 장점이 있습니다. 의사결정 속도입니다. Clayton Christensen 교수(하버드 경영대학원)는 이 현상을 '혁신자의 딜레마'의 연장선에서 설명합니다.

"대기업은 기존 고객과 기존 수익 모델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에서 파괴적으로 움직이기 어렵다. 내부 승인 과정, 기존 사업부와의 이해 충돌, 브랜드 리스크 관리 — 이 모든 것이 대기업의 속도를 늦춘다. 스타트업은 이 속도의 차이를 활용해야 한다."

(출처: Clayton Christensen, 『The Innovator's Solution: Creating and Sustaining Successful Growth』, Harvard Business Review Press, 2003)

고객을 빠르게 확보하는 것이 왜 방어책이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먼저 시장에 진입하여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면, 두 가지가 만들어집니다. 첫째, 고객의 데이터와 피드백이 쌓여서 제품이 더 빠르게 개선됩니다. 둘째, 고객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브랜드 충성도가 생깁니다. 대기업이 뒤늦게 들어와도, 이미 형성된 고객 관계를 빼앗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당근마켓이 네이버의 중고거래 서비스를 이겨낸 것도 이 원리입니다. 네이버가 당근마켓의 UX를 따라했지만, 이미 수천만 명의 충성 사용자를 확보한 당근마켓의 위치를 흔들지는 못했습니다.

경로 2: 증거로 싸우기 — 법적 대응

법적 대응은 가능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를 인식해야 합니다.

누군가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는 것과, 우리 것을 '베꼈다'는 것을 법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할 수 있고, 같은 시장의 같은 문제를 풀려고 하면 비슷한 솔루션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했다"는 것만으로는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증거가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카카오 헬스케어 사례에서 스타트업이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미팅 기록이 상세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 누구에게, 어떤 내용을 공유했는지가 문서화되어 있으면, 기밀 정보의 유출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Aaron Levie(Box 창업자 겸 CEO)는 대기업과 경쟁하는 상황에서의 심리적 태도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대기업이 당신의 시장에 진입했다면, 당신이 맞는 시장에 있다는 뜻이다. 대기업은 작은 시장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공포 대신 집중이 필요하다. 대기업은 열 가지를 동시에 하지만, 스타트업은 한 가지를 열 배 잘 할 수 있다. 그것이 스타트업의 무기다."

(출처: Aaron Levie, "Software is Eating the World, and SaaS is Eating Software", TechCrunch Disrupt, 2015)

법적 대응을 위한 현실적인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미팅의 기록(날짜, 참석자, 공유 내용). 아이디어 발전 과정의 문서(내부 회의록, 개발 일지). 상표권 등록. 가능하다면 핵심 기술에 대한 특허 출원. 이것들이 갖춰져 있으면, 설사 소송까지 가지 않더라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경로 3: 관계로 전환하기 — 전략적 파트너십

세 번째 경로는 경쟁 대신 협력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대기업이 우리 영역에 진입했다는 것은, 그 대기업이 이 시장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카카오의 경우, 벤처 투자 조직이 여러 개 있고, 오픈 이노베이션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네이버, 삼성, SK 등 대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스타트업의 기술과 속도를 원하고, 그 대가로 자금과 유통망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M. A. Cusumano 교수(MIT 슬로안 경영대학원)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관계가 단순한 경쟁을 넘어서는 경우를 분석합니다. "플랫폼 기업은 결국 '직접 만들기(build)'와 '사들이기(buy)' 사이에서 경제적 판단을 한다. 스타트업이 이미 강한 고객 기반과 차별화된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면, 대기업에게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인수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경쟁자가 잠재적 인수자로 바뀌는 순간이다."

(출처: M. A. Cusumano et al., 『The Business of Platforms: Strategy in the Age of Digital Competition, Innovation, and Power』, Harper Business, 2019)

우리나라 대기업의 M&A 문화가 아직 활발하지는 않지만,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협력이나 전략적 투자의 형태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우리 프로덕트가 대기업의 영역과 겹칠 것 같다면, 그 대기업의 투자 조직이나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먼저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전략입니다.

어떤 경로를 선택하든, 핵심은 같습니다

세 가지 경로를 정리했지만, 관통하는 원칙은 하나입니다. 결국 가장 강력한 방어는 고객입니다.

속도로 이기든, 법적으로 싸우든, 파트너십으로 전환하든 — 모든 경로에서 '우리에게는 고객이 있다'는 사실이 협상력의 근원이 됩니다. 고객이 없으면, 속도 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고, 법적 싸움에서도 '피해'를 증명하기 어렵고, 파트너십 제안에서도 우리의 가치를 보여줄 수 없습니다.

속 시원한 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대기업이 베끼면 법으로 완벽하게 막을 수 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신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대기업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고객과 더 깊은 관계를 만들고, 증거를 철저히 남겨두는 스타트업은 — 대기업이 들어와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경쟁자들은 무조건 우리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그 시선이 두려움이 아니라 동기부여가 되도록, 고객을 향해 더 빠르게 달리세요.

하나쯤 있으면 두려울 게 없는 든든한 내 편이 되어,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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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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