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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은 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걸까요?
대기업은 스타트업을 '육성'하지 않습니다. 금융업의 관점으로 '투자'합니다. CVC의 폭발적 성장과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접근하는 논리를 정리합니다.
Question. 대기업이 왜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나요? 대기업 입장에서는 직접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요?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것이 스타트업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나요?
GS가 팬프렌즈를 인수한 이유
2023년, GS그룹이 팬덤 커머스 스타트업 '팬프렌즈'를 인수했습니다. 팬프렌즈는 K-POP 팬덤을 대상으로 굿즈와 커머스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였습니다. GS는 이 회사에 초기 단계부터 3~4억 원을 투자하고, 성장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봤습니다. 팀의 실행력을 확인했고, 성장의 논리를 트래킹했고, 시장 가능성과 확장성을 검증한 후에 인수를 결정했습니다.
이것이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접근하는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처음부터 인수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소액을 투자하고, 지켜보고, 가능성이 확인되면 그때 큰 결정을 내립니다. 마치 씨앗을 심어놓고 자라는 것을 관찰한 후, 열매가 좋으면 밭째로 가져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대기업은 스타트업을 육성하지 않습니다. 투자합니다. 이 구분이 중요합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세 가지 이유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는 단순한 선의가 아닙니다. 명확한 사업적 논리가 있습니다.
첫째, 주업과의 시너지입니다. 삼성전자는 전자, 현대자동차는 자동차가 주업입니다. 이 주업과 연결되거나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스타트업이 있으면 투자를 고려합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기술 스타트업은 현대자동차에게, AI 반도체 스타트업은 삼성전자에게 전략적 가치가 있습니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기술이나 고객을 자신들의 주업으로 끌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신사업 탐색입니다. 대기업이 직접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느리고 비효율적입니다. 대기업의 의사결정 구조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불확실한 신사업에 빠르게 뛰어들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작은 비용으로 새로운 시장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잘 되면 인수해서 신사업으로 만들고, 안 되면 투자금만 잃으면 됩니다.
셋째, 금융 수익입니다. 기본적으로 대기업도 VC와 마찬가지로 금융업의 관점에서 투자합니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면 투자금의 몇 배, 몇십 배를 회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유 자금이 많은 대기업 입장에서는, 스타트업 투자가 자금 운용의 하나의 방법이 됩니다.
Henry Chesbrough(UC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 교수, 오픈이노베이션 개념의 창시자)는 대기업이 외부 혁신에 투자하는 구조적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대기업은 내부 R&D만으로는 혁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시장의 변화가 내부 프로세스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외부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협력하는 것은, 혁신의 비용을 낮추면서 속도를 높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이것이 오픈이노베이션의 핵심 논리다. 모든 좋은 아이디어가 우리 안에서 나올 필요는 없다."
(출처: Henry Chesbrough, 『Open Innovation: The New Imperative for Creating and Profiting from Technology』,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2003)
CVC의 폭발적 성장: 대기업의 투자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 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CVC(Corporate Venture Capital), 즉 대기업이 출자한 벤처캐피탈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배경이 있습니다.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지주회사도 CVC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많은 대기업들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와 인수를 고려하기 위해 CVC를 설립했습니다. 삼성, SK, LG, 현대, GS 등 주요 그룹이 모두 CVC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스타트업에게 의미하는 바는 큽니다. 과거에는 스타트업의 투자 파트너가 순수 VC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대기업 CVC라는 새로운 투자자 풀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CVC는 순수 VC와 다른 강점을 제공합니다. 자금뿐 아니라, 대기업의 유통 네트워크, 기술 인프라, 고객 기반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BCG(보스턴컨설팅그룹)는 CVC의 가치 창출 방식을 분석하면서 이렇게 정리합니다. "최고의 CVC가 순수 VC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전략적 시너지에 있다. 단순히 자금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모기업의 자원(고객, 기술, 유통)을 스타트업에 연결해줌으로써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속한다. 동시에 스타트업의 혁신을 모기업에 이식함으로써 양방향의 가치를 만든다. 이 전략적 시너지가 없는 CVC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에 불과하며, 존재 이유가 약해진다."
(출처: BCG, "How the Best Corporate Venturing Units Create Value", Boston Consulting Group Report, 2022)
대기업이 직접 만들면 되지 않나요?
자연스러운 질문입니다. 대기업에는 돈도, 인력도, 기술도 있는데, 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걸까요? 직접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대기업의 구조가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은 기존 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도록 최적화된 조직입니다. 보고 체계, 승인 절차, 리스크 관리 시스템 — 이 모든 것이 기존 사업의 안정성을 위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구조는 새로운 것을 빠르게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데에는 극도로 비효율적입니다.
스타트업은 정반대입니다. 3명이 한 달 만에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고객 반응을 보고, 다음 주에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피봇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이 같은 일을 하려면 기획안 작성, 부서 간 협의, 경영진 보고, 예산 승인 — 3개월이 걸릴 수 있습니다.
Scott Lenet(Touchdown Ventures 대표, CVC 전문가)은 이 구조적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은, 외부에 R&D 분소를 두는 것과 같다. 대기업 내부에서 10개의 신사업을 동시에 실험하려면 막대한 자원과 조직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10개의 스타트업에 소액 투자를 하면, 시장이 알아서 선별해준다. 살아남는 것에 추가 투자하고, 성장하면 인수한다. 이것이 대기업의 혁신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속도를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출처: Scott Lenet, "The Complete Guide to Corporate Venture Capital", Touchdown Ventures, 2020)
스타트업 입장에서 대기업 투자를 바라보는 법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논리를 이해했다면,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이 관계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비즈니스가 어떤 대기업에 시너지를 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해당 대기업의 CVC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노려볼 만합니다. 단순한 자금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년 안에 저 회사에 인수되겠다"는 것도 전략입니다. 앞서 엑싯 전략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대기업에 인수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적인 경로 중 하나입니다. 특정 대기업의 신사업 방향과 우리의 비즈니스가 맞닿아 있다면, 인수를 목표로 성장 전략을 설계하는 것도 합리적입니다.
다만, 대기업에 종속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대기업 한 곳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위험합니다. 대기업의 전략이 바뀌면, 투자도 협력도 한순간에 끊길 수 있습니다. 대기업과의 관계는 우리 비즈니스를 가속하는 수단이지, 비즈니스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벤처캐피탈에 관심을 갖고 대기업에 들어간다면, CVC 관련 일을 하거나 스타트업 관련 신사업을 맡게 될 수도 있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해하는 것은 창업뿐 아니라, 대기업에서의 커리어에도 분명 도움이 됩니다.
하나쯤 있으면 두려울 게 없는 든든한 내 편이 되어,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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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Henry Chesbrough, 『Open Innovation』,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2003
- BCG, "How the Best Corporate Venturing Units Create Value", 2022
- Scott Lenet, "The Complete Guide to Corporate Venture Capital", Touchdown Venture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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