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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가 되었나요?
계획된 커리어는 없었습니다. 경영학과에서 언론홍보로, 크라우드펀딩에서 콘텐츠로, 콘텐츠에서 액셀러레이터로. 예상 밖의 연결이 만들어낸 전문성의 이야기입니다.
Question.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처음부터 이 일을 목표로 했던 건가요? 어떻게 이 커리어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이런 비전형적인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방법이 있을까요?
경영학과에서 언론홍보대학원으로 — 우연이 만든 첫 번째 전환
리얼비즌 박진규 대표의 대학원 진학 이유는 솔직합니다. "회사를 때려 치울 수는 없고 뭔가 배우면서 다음 커리어를 준비하고 싶어서." 언론홍보에 깊은 뜻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진짜 우연히 가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 우연이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언론홍보대학원에서 예상치 못한 것을 배우게 됩니다 — 플랫폼. 미디어와 저널리즘 산업 자체를 플랫폼이 바꿔놓은 시대였기 때문에, 교수들이 플랫폼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학부에서 배운 비즈니스는 제조업 베이스였는데,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SNS가 산업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공부하게 된 것입니다. UX의 중요성에 관한 강의도 수강했습니다.
경영학 + 플랫폼 이론 + UX 이해. 이 조합이 "스타트업에 관심이 생기면서 진로를 확장하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처음부터 계획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David Epstein(과학 저널리스트, 커리어 연구가)은 이런 비선형적 경로의 가치를 실증적으로 분석합니다. "가장 혁신적인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한 분야에만 파고든 전문가가 아니라, 여러 분야를 경험하며 예상치 못한 연결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초기 커리어는 방황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다양한 '사고의 도구(thinking tools)'를 수집하는 과정이다. 이 도구들이 나중에 결합될 때, 한 분야만 아는 사람은 절대 볼 수 없는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출처: David Epstein, 『Range: Why Generalists Triumph in a Specialized World』, Riverhead Books, 2019)
경영학이라는 도구, 플랫폼 이론이라는 도구, UX 이해라는 도구. 박진규 대표의 초기 커리어는 바로 이 '사고의 도구'를 수집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크라우드펀딩에서 콘텐츠로 — 역할이 역할을 낳는 과정
다음 전환점은 와디즈였습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약 1년간 일하면서,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맡게 됩니다. 스타트업에 투자를 받고 싶은 팀과 투자를 할 사람들을 연결하는 업무였습니다.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만납니다. 리워드형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하는 사람의 심리와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하는 사람의 심리가 완전히 다릅니다. 리워드형은 "제품만 받으면 된다"지만, 증권형은 "내 투자가 망하면 안 된다"는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일반인이 스타트업 투자를 하기에는 지식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해결책은 콘텐츠였습니다. "일반인도 스타트업 투자를 할 수 있게 교육 콘텐츠를 만들겠다." 스타트업 투자에 관한 개론을 10여 편 발행했습니다. 하지만 개론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더 구체적인 사례로 투자 안목을 기를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유니콘 기업 분석 콘텐츠입니다. "유니콘이 정답은 아니지만, 창업한지 몇 년 안에 엄청난 성장을 해낸 기업이잖아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개인 입장에서는 '왜 VC와 액셀러레이터가 여기에 투자했을까'를 알면 학습이 일어날 수 있는 거죠." 유니콘이 된 스타트업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어떤 포인트에서 성장했는지를 리서치하고 분석하여 콘텐츠를 발행했습니다.
이 유니콘 분석 콘텐츠가 쌓이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콘텐츠를 바탕으로 트레바리처럼 사람들을 모아 스터디를 운영하게 되었고, 벤처 프로그램을 돌리고, 초기 스타트업 육성까지 이어졌습니다.
Herminia Ibarra(런던 비즈니스 스쿨 교수, 커리어 전환 연구의 권위자)는 이런 과정을 '실험적 정체성 형성(experimental identity)'이라고 부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리어 전환을 '먼저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실행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성공적인 전환을 한 사람들의 패턴은 정반대다. 먼저 행동하고, 그 행동에서 나온 결과를 보고, 다음 방향을 결정한다. 계획이 행동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계획을 만들어낸다."
(출처: Herminia Ibarra, 『Working Identity: Unconventional Strategies for Reinventing Your Career』,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2003)
박진규 대표의 커리어가 정확히 이 패턴입니다. "투자 교육 콘텐츠를 만들자" → 유니콘 분석 → 스터디 운영 → 벤처 프로그램 → 액셀러레이터. 각 단계에서 "이걸 하니까 저것이 가능해지더라"는 발견이 다음 단계를 열었습니다. 처음부터 '액셀러레이터가 되겠다'는 계획은 없었습니다.
콘텐츠가 전문성이 되고, 전문성이 사업이 되기까지
이 커리어 경로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콘텐츠의 역할입니다.
박진규 대표가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이유는 순수했습니다. 업무상 필요해서. 일반인들이 스타트업 투자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하지만 콘텐츠를 계속 만들면서,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첫째,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학습이었습니다. 유니콘 기업을 분석하려면 VC의 투자 논리를 이해해야 하고, 시장의 구조를 읽어야 하고, 비즈니스 모델의 강점과 약점을 판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개, 20개, 30개의 유니콘을 분석하면서, 패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떤 팀이 성장하고,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는지. 이 축적된 분석 경험이 곧 액셀러레이터로서의 전문성이 되었습니다.
둘째, 콘텐츠가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콘텐츠를 읽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스타트업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 이 사람들이 모여서 스터디가 되었고, 벤처 프로그램이 되었고, 결국 액셀러레이터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Brad Feld(Techstars 공동창업자, 스타트업 생태계 연구가)는 이런 과정을 '커뮤니티 주도형 생태계 구축'으로 설명합니다.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는 톱다운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정 주제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하고, 그 지식이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모인 사람들이 함께 실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생태계가 형성된다. 가장 강력한 생태계는 누군가가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계획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지식 공유와 관계 형성의 누적 결과로 탄생한 것이다."
(출처: Brad Feld, 『Startup Communities: Building an Entrepreneurial Ecosystem in Your City』, Wiley, 2012)
리얼비즌이 바로 이 패턴입니다. 콘텐츠(지식 공유) → 커뮤니티(관계 형성) → 프로그램(실험) → 액셀러레이터(생태계). 처음부터 액셀러레이터를 만들겠다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콘텐츠의 축적이 자연스럽게 생태계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비선형 커리어의 본질 —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의 결합'
박진규 대표는 자신의 커리어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배움의 경험, 일 경험, 우연한 기회들이 결합되면서 계속해서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이 결합되어 더욱 새로운 것으로 나아온 결과."
이 문장에 핵심이 있습니다. '결합'입니다. 경영학 + 플랫폼 이론 =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 스타트업 이해 + 크라우드펀딩 실무 = 투자 교육의 필요성 인식. 투자 교육 + 콘텐츠 생산 = 유니콘 분석 전문성. 유니콘 분석 + 커뮤니티 = 액셀러레이터.
각각의 경험은 그 자체로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결합되었을 때, 다른 방식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독특한 전문성이 됩니다. 경영학만 아는 사람도 아니고, 미디어만 아는 사람도 아니고, 투자만 아는 사람도 아닌. 이 모든 것의 교차점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도 가능성을 계속해서 넓히는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빈 말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경험이, 3년 후 5년 후에 어떤 것과 결합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각 경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때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해보는 것입니다. 계획된 커리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매 순간 진지하게 임한 결과가, 결국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 도달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쯤 있으면 두려울 게 없는 든든한 내 편이 되어,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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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David Epstein, 『Range: Why Generalists Triumph in a Specialized World』, Riverhead Books, 2019
- Herminia Ibarra, 『Working Identity: Unconventional Strategies for Reinventing Your Career』,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2003
- Brad Feld, 『Startup Communities: Building an Entrepreneurial Ecosystem in Your City』, Wiley,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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